2005년 9월, 블리자드사의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거대한 전염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패치 이후 등장한 레이드 던전인 '줄구룹'의 최종보스 '학카르'는 "오염된 피"라는 디버프를 사용했는데, 이 디버프는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300 가까이 되는 피해를 입히고, 주변 플레이어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이 능력은 플레이어가 무슨 짓을 해도,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닌 이상 절대 풀 수 없었다. 다만, 학카르가 상대의 체력을 빨아들여 자기 생명력을 채우는 '피의 착취'라는 스킬을 플레이어에게 사용했을 때, 이 '오염된 피'를 빨아들여서 생명력 회복은커녕 디버프 데미지만 입고 플레이어의 디버프는 사라지는 형식으로 치료가 되었다.

이는 던전 내에서만 적용되는 디버프였기 때문에 '줄구룹'을 나가면 자동으로 제거되었지만, 여기엔 무시무시한 구멍이 숨겨져 있었다. 펫을 부리는 특정 직업군의 유저들이 던전 내에서 펫을 이용하다가 펫이 이 디버프에 걸리고, 이 펫을 디버프 걸린 상태에서 '소환 해제'한 후 줄구룹을 나가 대도시에서 다시 소환하자, 펫의 디버프가 해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플레이어들은 만렙이라도 평균적으로 체력 5천이 되지 않은지라 전염병의 치사율은 굉장히 높았고, WOW의 동시접속자 수는 당시 몇백만이 되었기 때문에 대도시를 시작으로 엄청난 속도로 전염되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감염된 것은 NPC들이었는데, 이들은 전투상태가 아닐 땐 자동으로 지속회복이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디버프가 걸린 상태에서도 죽지 않았다. 따라서 그냥 주변을 지나다니기만 해도 디버프가 옮아 자동적으로 감염되는 사이클이 계속되었다. 또한, 특히나 저렙 유저들은 체력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하였다. 어떤 유저들은 자기가 디버프에 걸렸는줄도 모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 지역에서 또 디버프를 전염시키기도 하였다.

이 와중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행동양식을 보였는데, 힐러 직업군의 유저들은 자원해서 디버프에 걸린 사람들의 체력을 치료했고(디버프 자체는 플레이어가 풀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체력회복만 해 주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대증요법'), 일부는 위험한 지역을 피하도록 유저들에게 공지하거나, 대도시의 출입을 힘으로 막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일부는 디버프를 피하기 위해 통제되는 대도시를 탈출하려고 하기도 했으며, '치료제'라고 일반 물약을 고가에 다른 유저들에게 팔아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고의적으로 전염병을 확산시키고자 보균 상태로 대도시로 침입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이는 실제 전염병 발생시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BBC 등 많은 언론들의 조명을 받았고, 미 CDC에서도 전염병관리를 위한 연구자료로 쓰기 위해 블리자드에 서버데이터를 요구했다가 '단지 서버 오류일 뿐이었다'며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NPC는 증상 없는 보균자, 저렙 유저들은 노약자와 아동들, 그리고 힐러 유저들은 자원봉사자나 의료인, 그리고 지역을 통제한 유저들은 정부관료나 군경들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2 13:55:30: